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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-03-10 18:19 조회3,208회 댓글0건본문
<다시 봄날>
까마득하게 오래 전이지만 나에게도 봄날이 있었다.
그때가 1980년대 초였으니까 나는 30대 초반의 멋 내기 좋아하는 아가씨였다.
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바람머리 스타일을 하고 다녔는데
어찌나 자연스럽고 청순해 보이던지, 한동안 그 스타일을 고집하고 다녔다.
어느 덧 들국화 향기 그윽한 황혼의 길목에 선 나이가 되었다.
가득한 흰머리는 말할 것도 없고
머릿속이 훤히 보이게 빠져버린 내 모습 앞에서
인생의 허무함이 몰려왔다.
그러던 어느 봄날이었다.
딸아이와 백화점 나들이를 갔다가 어느 매장의 친절한 분의 목소리에 이끌려
내 모습을 바꾸게 되었다.
순식간에 내가 좋아하는 자연스러우면서도 탐스런 머리모양이 된 것이다.
딸아이는 선뜻 거금을 들여
나에게 보물 1호가 된 헤어웨어를 선물해 주었다.
괜찮다, 이 나이에 뭘 하니, 하면서도 어찌나 좋던지.
그해 겨울 옛 친구들을 만났는데, “다들 뉘집 귀부인이냐!”며 칭찬을 쏟아냈다.
우쭐해지는 바람에 밥값을 크게 내고는 한동안 빈 지갑을 들고 다녔다.
그래도 기분은 좋았고 마음은 따뜻했다.
곧 칠순 생일이다.
며칠 전에는 며늘아기가 “어머님~ 생신선물 뭘로 해드릴까요?” 하기에
“선물은 무슨... 근데 머리 손질 좀 해야 하는데...”
시침이 뚝 떼고 넉살을 부렸더니 헤어웨어 보물 제2호가 생겼다.
귀부인처럼 멋을 내고 멋진 대접을 받았고
아들, 며느리에 딸, 사위, 손주들 그리고 남편까지 온 가족이 동해안을 다녀왔다.
바람머리 스타일을 고집하던 30대의 내가 이렇게 늙어간다.
영영 오지 않을 것 같던 봄날이, 다시 찾아왔다.
헤어웨어로 내 인생의 행운이 반짝이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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